살아가다 보면... 누구에게나
하나..아니 어쩜 수많은 후회를 안고
아무렇지 않은듯이 살아 간다.
그 중 하나..
25년 전, 그 트럭 안에서 마주친 그 눈빛
난 가슴에 얹고 살아 간다.

어른들의 고향은 충청북도..산골 마을
산골 마을인지라
생선과는 거리가 멀게 지냈다네요.
식구들이 모이는 자리가 되면
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울 엄마는 시장에서
개고기를 사다
맛나게 끓여 두루 두루 모여 먹기도하고
싸 주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.
그렇게 난...
자연스레 맛난 음식..좋아하는...
그래서 일까..난 교감이나 반려 동물 이란 생각보단
식용에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.
그것이 참 미개하단 생각을 그때는 미쳐 몰랐습니다.
난 결혼을 하고 딸 셋을 두었습니다.
아이 아빠는 집안 종교상 개고기는 절대..금물..
가끔..때가 되면
난 내 어린 딸들을 데리고
여자 넷이..
즐기러 다녔습니다..그때는 그랬습니다

1990년대 말쯤...우리집에
작고 어린 골든리트리버 가을이가 왔습니다.
6개월이 지나니 그 아이는 엄청 큰 어린 아이로 자랐고,
깔끔한척 하는 나는 그 아이의 털에
원형 탈모를 앓아야 했습니다.
그렇게 힘들어 하던 나는 그 아이 가을이를
언니네 회사 문지기로...
참 모질었음도 그때는 몰랐습니다.
어느날 나는 인천 공항을 가는 고속도로 위
허름한 어느 트럭위 창살에 갇힌
개 들..
갇혀있다 아니..포개져 있는 아이들
그들중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 눈빛은
25년이 지난 지금도
절대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혀지지 않는
그 슬픈 눈빛은
내 가슴에 절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.

그렇게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집에는
아주 큰 아이들 3명과 함께 뒹굴며 지냅니다.
(루시, 루키, 루디)
분명 지금 현재 그때 보다 훨씬 어려운
상황에 있습니다.
속죄라도 하려는듯 나는
그 아이들과의 이별에 대해선
죽음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생긴것 같습니다.
그때는 왜 그렇게 몰랐을까요???
그 슬픈 눈빛을 빨리 알았더라면...그렇게
맛나다는 생각이 아닌 교감이나 산책이란 단어들에
친숙함을 느끼지 않았을까하는...미련이
많이 참 많이 남습니다.

25년 전..
그 트럭 창살 속 눈빛을 잊지 못해 시작된 지금의 인연..
그 눈빛에 보답하는 마음으로
오늘도 저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...
여러분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의 이야기도
함께 해볼까요??

